소설호텔
설계 2012.06 ~ 2014.08
면적 3,771.0㎡
용도 호텔
구분 신축
협동 공동(건축집단 MA), 시공(빗살무늬건축), 사진(남궁선)
업무담당 엄태산, 김준호
#서초동 #소설호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변하지 않았지만, 도시는 건물을 조금 새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배롱나무 위 처마는, 정확히 무슨 형태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덕분에 주변의 정원과 내어진 빈 공간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낮은 나무와 여린 풀 더미를 스쳐 건물 쪽으로 다가 섭니다. 부드럽게 반사되는 빛들이 바람처럼 불어옵니다. 벽돌은 벽이 되어 이어지다 멈춰 서서 입구를 만들고, 깊고 높은 커튼이 나를 품듯 정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를 젖히면, 종전과는 다른 곳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한 눈에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는 알아채기 힘든 공간. 나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카운터를 지나면, 반드시 뒤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푹신한 카펫, 단단한 대리석, 울림 없는 벽지. 여기에 이르는 동안 만났던 기억 속의 재료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휘어지는 복도는 감각의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데자뷰 그리고 약간의 현기증.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실패하지 않고 객실 문을 찾아냅니다. 드디어 문이 열립니다. 각각의 방은 들어오는 모든 상황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방은 모습을 갖추고 기능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재료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은 채,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서로 만나고 헤어집니다. 단단한 바탕 위에 정밀하게 만들어진 맞춤새는, 재료들의 완고한 악수 같습니다. 따뜻한 포옹입니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그래서 친숙하기도 한 나무와 돌은 이 호텔 객실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여기서 이 둘은 서로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닿으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나무는, 처음에는 안락한 침대 주변에 차분히 머물면서 쓰임새가 유용한 작은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편안한 등받이가 되기도 하며 피곤에 지친 발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반듯한 발판이 됩니다.
그러다가도 어느덧 침실의 주인을 욕실로 안내하는 넉넉한 벽면의 안내자가 되어 물에 젖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하고, 바람과 햇볕이 가득한 발코니의 가느다란 창틀이 되어 침실 곁에 함께 하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단단하면서도 화려한 무늬를 지닌 돌의 육중한 표면은 침실 바닥 아래에 내려와 깔려 언제든 아무렇게 앉거나 편히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소파처럼 야트막한 계단이 되고, 이윽고 샤워실의 벽면은 물론이고 따뜻한 물이 담기는 욕조나 동그랗고 조그만 세면대로 변하기도 합니다.
손 망치로 두들겨 비스듬히 깎아 만든 돌벽의 자연스런 장식은 그 육중함을 덜어내어 가까이 곁에 두어도 불편함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밀도가 다르고 비중이 다르니 당연히 그 부피도 다르고 무게도 다른 것만큼이나 나무와 돌은 서로가 닮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자연을 한군데에다 고스란히 모아두고 나란히 바라본다면, 각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스스로 드러낼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시작된 시도는 지금에서야 그 결실을 맞이합니다. 이제 남겨진 것은 바로 이곳을 방문할 모든 분이 그렇게 해서 드러난 어떤 무언가를 직접 찾아내고 또 직접 느껴보는 순간들뿐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일상의 무거움을 내려둘 편안함이 깃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디테일(detail)
어떤 분야의 계획이든 디테일 작업이 전체의 후반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그 분야가 건축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디테일이 계획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인테리어인 경우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며 작업의 <엄밀함>이 강조되기도 하고(God is in the details. _ Mies van der Rohe) 또는 “돈 없이는 디테일도 없다” 며 계획의 <개념>을 앞세우는 경우도 있지만(no money, no detail, just pure concept. _ Rem Koolhaas) 이 프로젝트에서의 디테일은 전체 계획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깃발이자 발판이었다. 디테일은 단순히 재료의 접합이나 마감의 깨끗한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동기(motive)가 되고, 각각 재료들의 마무리가 아니라 이웃한 재료를 향한 시작이 되며, 때로는 그 자체가 공간 전체에 어떤 특질을 부여하기도 한다. 재료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디테일을 통해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성이 잘 표현된 디테일은 당연히도 다른 재료와의 차이를 지니게 되고 그 독특함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의 재료가 되었다.
바닥, 벽 그리고 천정(floor, wall and ceiling)
방의 내부를 이루는 <바닥과 벽과 천정>은 건축에 있어 '땅과 기둥과 지붕' 만큼이나 보편적(universal)인 요소(elements)다. 그러니 '바닥(floor)'을 두 다리로 딛고 '벽(wall)'에 등을 기대어 '천정(ceiling)' 아래에 몸을 두는 것은 바로 건축의 오래된 역사라 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각각 분리되어 보이는 요소들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조금 다르다. 바닥을 이루던 재료가 벽이나 옷장이 되기도 하고(a, b, c, f, h) 벽이 천정으로 이어지기도 하고(corridor) 바닥과 천정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기도 한다(e, l, lobby). 발코니에서 볼 수 있던 외벽 재료가 객실 내부의 벽체가 되고(k) 심지어는 내부 공간 전체를 둘러싼다(g). 깊이를 알 수 없는 높고 긴 벽체의 끝이 휘어지고 꺾여 프론트 데스크와 그 상부의 (반쪽) 아치를 만들고(lobby), 1층 로비의 바닥과 천정을 이루던 모자이크 무늬는 최상층의 펜트하우스에 이르면 바닥과 벽과 (기울어진) 천정의 모든 면을 빠짐없이 뒤덮는다(l). 모든 건축도면의 실내재료마감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바닥과 벽 사이에는 항상 걸레받이(baseboard)가 존재한다. 기능적 요구로부터 등장한 이런 요소는 벽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바닥의 일부도 된다. 두 요소의 사이를 오고가며 존재하는 또 다른 예로는 벽과 천정 사이의 몰딩을 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문이나 창(개구부) 역시 벽과 비슷한 관계를 이룬다. 건축을 이루는 기본적(regular)이면서도 보편적(universal)인 요소들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을 열어나가는 독특한(unusual) 열쇠가 되고, 그것에 대한 해석과 판단 그리고 직관과 반응이 한데 모여 또 다른 구체적(specific) 결과를 만든다.
재료와 사물(material and matter)
재료는 사물과 그 사물로 만들어진 작업의 결과물, 사이에 있다. 즉 사물이 변해서 재료가 되고 재료가 변해서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건물(building)이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이 되려면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하며, 재료 속에는 그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속성(attribute)이다. 속성이란 사물이 그 사물다울 수 있는 전제조건과도 같은데, 재료 속에 사물의 속성이 담겨지려면 또 다른 특별한 작업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사물에 대한 존중(혹는 태도)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것에 대한 충실과 배반이 동시에 있다. 진짜와 모조가 섞여있고 실상(thing-in-itself)과 허상(phenomenon)이 공존하며 고유성(characteristic)과 우유성(Accident)이 교차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실재하듯이, 돌은 육중하면서도 동시에 가늘고 날카로우며, 나무는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단단하다. 두텁게 쌓아올려진 벽돌이 다른 어딘가에서는 얇게 썰린 채 매달려 붙어있고, 쓰여진 위치와 용도에 따라 그 구분이 어려울 정도인 타일과 벽지는 피복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미 그 둘은 하나다. 모든 재료는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도 의외의 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프로젝트에서 재료는 사물로부터 만들어졌지만 사물의 외모와 성격을 절반씩 나눠가졌다.
거울(mirror)
“거울 속에는 소리도 없고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라 내 악수를 받을 줄도 모르지만, 나와 반대인 거울 속의 나는, 나와 꽤 닮았다.”(이상) 보통의 경우 바닥은 천정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크기에서도 그렇고 모양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항상 바닥 위를 걷고 언제나 천정 아래에 있다. 다르지만 비슷하고, 닮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관계. 바로 그것을 완벽히 똑같게 만들었다(lobby, e). 바닥은 천정이 되고 천정은 바닥의 거울이 되어, 바닥을 걷다보면 마치 천정을 ‘내려다’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든다. 그래서 내부를 밝히는 조명 역시 바닥과 천정의 아래, 위를 동시에 비춘다. 물론 바닥과 천정 어디에도 거울은 없다(e). 휘어진 벽면을 가득 채운 검은 색 스테인레스 철판은 천정에 흩뿌려진 조명 불빛들의 자연스러운 무질서를 다시 한 번 왜곡시켜서 마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천정을 만든다(lobby). 객실 입구와 마주한 반대쪽 벽면의 거울은 건너편을 향해 또 다른 출구를 만들지만 결코 그리로 나갈 수는 없다(j, m, corridor). 혹은 객실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좌우로 길게 펼쳐진 두 개의 침실을 만나게 되지만 둘 중 하나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덕택에 굳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도 없다(h). 바닥과 거울 문에 절반씩 비춰 만든 둥근 조명 빛은 그 거울 문이 열렸을 때 바닥에 나타나는 조명의 상과 모양이 같다. 바로 실재와 허상이 겹쳐지는 순간이다(e). 면도나 화장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매일 한 번씩은 누구나 거울을 본다. 그만큼 친숙한 대상인 거울이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일상에 조금 다른 낯설음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가구(furniture)
협탁, 옷장, 테이블, 선반, 세면대, 그리고 욕조. 객실을 채우고 있는 많은 가구들이 있지만 전부가 다 객실 밖에서 가져온 것은 아니다. 벽면의 일부가 튀어나오거나 형태가 변해 침대의 등받이가 되며 또 그 등받이의 일부는 다시 조그만 탁자가 된다(a, b, c, d, e, i, j, k). 광장의 넓은 계단처럼 높이가 다른 바닥은 의자나 등받이가 되고(a) 바닥의 한 가운데가 솟아올라 테이블과 침대등받이를 겸하며(e) 세면대와 샤워부스는 욕조의 일부이자 그것은 애초, 객실 바닥의 연장이다(a, b). 티비나 노트북이 올려진 기다란 테이블은, 옷장과 화장실은 물론이고 현관 바닥의 매트가 되기도 한다(b). 아래로 내려앉은 바닥에 물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그곳이 욕조가 되고, 벽에서 튀어나온 둥그런 돌조각은 세면대가 되며 그 벽이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 침실에 이르면 침대의 주위를 비스듬히 감싸는 커다란 침대등받이가 된다(c). 마침내 침대는 가구가 아니게 된다. 침대는 침실의 일부다.
소설호텔
설계 2012.06 ~ 2014.08
면적 3,771.0㎡
용도 호텔
구분 신축
협동 공동(건축집단 MA), 시공(빗살무늬건축), 사진(남궁선)
업무담당 엄태산, 김준호
#서초동 #소설호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변하지 않았지만, 도시는 건물을 조금 새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배롱나무 위 처마는, 정확히 무슨 형태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덕분에 주변의 정원과 내어진 빈 공간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낮은 나무와 여린 풀 더미를 스쳐 건물 쪽으로 다가 섭니다. 부드럽게 반사되는 빛들이 바람처럼 불어옵니다. 벽돌은 벽이 되어 이어지다 멈춰 서서 입구를 만들고, 깊고 높은 커튼이 나를 품듯 정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를 젖히면, 종전과는 다른 곳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한 눈에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는 알아채기 힘든 공간. 나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카운터를 지나면, 반드시 뒤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푹신한 카펫, 단단한 대리석, 울림 없는 벽지. 여기에 이르는 동안 만났던 기억 속의 재료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휘어지는 복도는 감각의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데자뷰 그리고 약간의 현기증.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실패하지 않고 객실 문을 찾아냅니다. 드디어 문이 열립니다. 각각의 방은 들어오는 모든 상황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방은 모습을 갖추고 기능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채워지게 됩니다. 재료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은 채,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서로 만나고 헤어집니다. 단단한 바탕 위에 정밀하게 만들어진 맞춤새는, 재료들의 완고한 악수 같습니다. 따뜻한 포옹입니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그래서 친숙하기도 한 나무와 돌은 이 호텔 객실의 대부분을 이룹니다. 여기서 이 둘은 서로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닿으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나무는, 처음에는 안락한 침대 주변에 차분히 머물면서 쓰임새가 유용한 작은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편안한 등받이가 되기도 하며 피곤에 지친 발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반듯한 발판이 됩니다.
그러다가도 어느덧 침실의 주인을 욕실로 안내하는 넉넉한 벽면의 안내자가 되어 물에 젖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하고, 바람과 햇볕이 가득한 발코니의 가느다란 창틀이 되어 침실 곁에 함께 하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단단하면서도 화려한 무늬를 지닌 돌의 육중한 표면은 침실 바닥 아래에 내려와 깔려 언제든 아무렇게 앉거나 편히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소파처럼 야트막한 계단이 되고, 이윽고 샤워실의 벽면은 물론이고 따뜻한 물이 담기는 욕조나 동그랗고 조그만 세면대로 변하기도 합니다.
손 망치로 두들겨 비스듬히 깎아 만든 돌벽의 자연스런 장식은 그 육중함을 덜어내어 가까이 곁에 두어도 불편함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밀도가 다르고 비중이 다르니 당연히 그 부피도 다르고 무게도 다른 것만큼이나 나무와 돌은 서로가 닮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자연을 한군데에다 고스란히 모아두고 나란히 바라본다면, 각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스스로 드러낼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시작된 시도는 지금에서야 그 결실을 맞이합니다. 이제 남겨진 것은 바로 이곳을 방문할 모든 분이 그렇게 해서 드러난 어떤 무언가를 직접 찾아내고 또 직접 느껴보는 순간들뿐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일상의 무거움을 내려둘 편안함이 깃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디테일(detail)
어떤 분야의 계획이든 디테일 작업이 전체의 후반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그리고 그 분야가 건축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디테일이 계획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인테리어인 경우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며 작업의 <엄밀함>이 강조되기도 하고(God is in the details. _ Mies van der Rohe) 또는 “돈 없이는 디테일도 없다” 며 계획의 <개념>을 앞세우는 경우도 있지만(no money, no detail, just pure concept. _ Rem Koolhaas) 이 프로젝트에서의 디테일은 전체 계획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깃발이자 발판이었다. 디테일은 단순히 재료의 접합이나 마감의 깨끗한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동기(motive)가 되고, 각각 재료들의 마무리가 아니라 이웃한 재료를 향한 시작이 되며, 때로는 그 자체가 공간 전체에 어떤 특질을 부여하기도 한다. 재료들은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디테일을 통해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성이 잘 표현된 디테일은 당연히도 다른 재료와의 차이를 지니게 되고 그 독특함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의 재료가 되었다.
바닥, 벽 그리고 천정(floor, wall and ceiling)
방의 내부를 이루는 <바닥과 벽과 천정>은 건축에 있어 '땅과 기둥과 지붕' 만큼이나 보편적(universal)인 요소(elements)다. 그러니 '바닥(floor)'을 두 다리로 딛고 '벽(wall)'에 등을 기대어 '천정(ceiling)' 아래에 몸을 두는 것은 바로 건축의 오래된 역사라 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각각 분리되어 보이는 요소들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조금 다르다. 바닥을 이루던 재료가 벽이나 옷장이 되기도 하고(a, b, c, f, h) 벽이 천정으로 이어지기도 하고(corridor) 바닥과 천정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기도 한다(e, l, lobby). 발코니에서 볼 수 있던 외벽 재료가 객실 내부의 벽체가 되고(k) 심지어는 내부 공간 전체를 둘러싼다(g). 깊이를 알 수 없는 높고 긴 벽체의 끝이 휘어지고 꺾여 프론트 데스크와 그 상부의 (반쪽) 아치를 만들고(lobby), 1층 로비의 바닥과 천정을 이루던 모자이크 무늬는 최상층의 펜트하우스에 이르면 바닥과 벽과 (기울어진) 천정의 모든 면을 빠짐없이 뒤덮는다(l). 모든 건축도면의 실내재료마감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바닥과 벽 사이에는 항상 걸레받이(baseboard)가 존재한다. 기능적 요구로부터 등장한 이런 요소는 벽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바닥의 일부도 된다. 두 요소의 사이를 오고가며 존재하는 또 다른 예로는 벽과 천정 사이의 몰딩을 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문이나 창(개구부) 역시 벽과 비슷한 관계를 이룬다. 건축을 이루는 기본적(regular)이면서도 보편적(universal)인 요소들이 이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을 열어나가는 독특한(unusual) 열쇠가 되고, 그것에 대한 해석과 판단 그리고 직관과 반응이 한데 모여 또 다른 구체적(specific) 결과를 만든다.
재료와 사물(material and matter)
재료는 사물과 그 사물로 만들어진 작업의 결과물, 사이에 있다. 즉 사물이 변해서 재료가 되고 재료가 변해서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건물(building)이 아니라 건축(architecture)이 되려면 다른 무언가를 필요로 하며, 재료 속에는 그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속성(attribute)이다. 속성이란 사물이 그 사물다울 수 있는 전제조건과도 같은데, 재료 속에 사물의 속성이 담겨지려면 또 다른 특별한 작업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바로 사물에 대한 존중(혹는 태도)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그것에 대한 충실과 배반이 동시에 있다. 진짜와 모조가 섞여있고 실상(thing-in-itself)과 허상(phenomenon)이 공존하며 고유성(characteristic)과 우유성(Accident)이 교차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실제와 다르게 실재하듯이, 돌은 육중하면서도 동시에 가늘고 날카로우며, 나무는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단단하다. 두텁게 쌓아올려진 벽돌이 다른 어딘가에서는 얇게 썰린 채 매달려 붙어있고, 쓰여진 위치와 용도에 따라 그 구분이 어려울 정도인 타일과 벽지는 피복의 기능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미 그 둘은 하나다. 모든 재료는 각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도 의외의 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프로젝트에서 재료는 사물로부터 만들어졌지만 사물의 외모와 성격을 절반씩 나눠가졌다.
거울(mirror)
“거울 속에는 소리도 없고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라 내 악수를 받을 줄도 모르지만, 나와 반대인 거울 속의 나는, 나와 꽤 닮았다.”(이상) 보통의 경우 바닥은 천정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크기에서도 그렇고 모양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항상 바닥 위를 걷고 언제나 천정 아래에 있다. 다르지만 비슷하고, 닮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관계. 바로 그것을 완벽히 똑같게 만들었다(lobby, e). 바닥은 천정이 되고 천정은 바닥의 거울이 되어, 바닥을 걷다보면 마치 천정을 ‘내려다’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든다. 그래서 내부를 밝히는 조명 역시 바닥과 천정의 아래, 위를 동시에 비춘다. 물론 바닥과 천정 어디에도 거울은 없다(e). 휘어진 벽면을 가득 채운 검은 색 스테인레스 철판은 천정에 흩뿌려진 조명 불빛들의 자연스러운 무질서를 다시 한 번 왜곡시켜서 마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천정을 만든다(lobby). 객실 입구와 마주한 반대쪽 벽면의 거울은 건너편을 향해 또 다른 출구를 만들지만 결코 그리로 나갈 수는 없다(j, m, corridor). 혹은 객실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좌우로 길게 펼쳐진 두 개의 침실을 만나게 되지만 둘 중 하나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덕택에 굳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도 없다(h). 바닥과 거울 문에 절반씩 비춰 만든 둥근 조명 빛은 그 거울 문이 열렸을 때 바닥에 나타나는 조명의 상과 모양이 같다. 바로 실재와 허상이 겹쳐지는 순간이다(e). 면도나 화장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매일 한 번씩은 누구나 거울을 본다. 그만큼 친숙한 대상인 거울이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일상에 조금 다른 낯설음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가구(furniture)
협탁, 옷장, 테이블, 선반, 세면대, 그리고 욕조. 객실을 채우고 있는 많은 가구들이 있지만 전부가 다 객실 밖에서 가져온 것은 아니다. 벽면의 일부가 튀어나오거나 형태가 변해 침대의 등받이가 되며 또 그 등받이의 일부는 다시 조그만 탁자가 된다(a, b, c, d, e, i, j, k). 광장의 넓은 계단처럼 높이가 다른 바닥은 의자나 등받이가 되고(a) 바닥의 한 가운데가 솟아올라 테이블과 침대등받이를 겸하며(e) 세면대와 샤워부스는 욕조의 일부이자 그것은 애초, 객실 바닥의 연장이다(a, b). 티비나 노트북이 올려진 기다란 테이블은, 옷장과 화장실은 물론이고 현관 바닥의 매트가 되기도 한다(b). 아래로 내려앉은 바닥에 물이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그곳이 욕조가 되고, 벽에서 튀어나온 둥그런 돌조각은 세면대가 되며 그 벽이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 침실에 이르면 침대의 주위를 비스듬히 감싸는 커다란 침대등받이가 된다(c). 마침내 침대는 가구가 아니게 된다. 침대는 침실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