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al]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관리자2025-07-05 14:00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 공공성과 구축 사이의 대화, C3 2025년 4호 (통권438호)
인터뷰이: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 비엔나공대), 윤근주 (건축가, 일구구공도시건축)
인터뷰어: 정만영 (교수, 건축평론가)
정만영: 2019년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후 5년 이상을 기다린 끝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하 사진미술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님께 묻겠다. 이번 사진미술관을 계기로 교수님의 건축 활동이 한국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건축가로서의 성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다. 세 가지 일반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다.
첫째, 평소 건축작업을 수행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적 입장은 무엇인가?
믈라덴 야드리치: 인생 전체는 하나의 연속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경험한 이미지와 배운 교훈들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이야기의 일부다. 오스트리아의 유명 건축가 한스 홀라인의 모토인 “모든 것은 건축이다”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평생 교육이라는 이론에 대한 기여로 이해할 수 있다.
윤근주 : 건축이 세계를 한정된 물체로 확정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도록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담아 내려 노력한다. 이것은 문자라는 보편 기호를 이용해 개별 독자에게 감흥을 일으키려는 문학의 목표(1)와 닮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기(1) : 오르한 파묵의 허버드대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 중 하나의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각자의 머리 속에 개별적으로 감흥이 일어나는 지 설명.
정만영: 둘째,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예; 상향식인지 하향식인지)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는 어떤 특성과 장점이 있다고 보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꿈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예언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측이라기보다는, 소망이 성취되는 모습을 투사하는 것이며, 무언가를 현실로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건축이 음악이나 시처럼 상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과 시적 상상을 대조시키는 세계이자, 물질적 존재를 초월하는 동시에 삶의 중심에 자리하는 그런 세계 말이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건축은 끊임없이 스스로와 마주하며, 매 순간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일생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윤근주 : 멀리서 보면 흡사 허리케인이 땅 위에 것들을 끌며 회전하며 오르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닥을 긁듯 현장을 읽고 쳇바퀴처럼 맴돌지만 중심과의 인력을 유지하며 조금씩 상향한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비유적으로 설명했지만 우리 집단의 설계방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땅과 대상, 조건 읽기 – 중심개념을 견지한 대안 모색 – 발전과 후퇴의 반복 – 완성 후 또 다른 변화 수용” 이처럼 바꿔 적을 수 있다.
정만영: 셋째, 가장 높게 평가하는 건축가의 작품은 무엇이며 어떤 점에 주목하고 있나?
믈라덴 야드리치: 창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대부분 합리적인 논리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설계는 대부분 언어와 글쓰기, 스케치, 모형 제작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때로는 건물의 향기를 꿈꾸거나, 건물 내부에서 메아리가 울리는 소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강조한다. 건축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는 ‘성찰’이 매우 중요하다. 팀 내에서 이야기하고, 설득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벽 속 깊은 곳의 침묵 속에 스며 있으며, 장인정신이 응축된 하나의 구성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윤근주 : 최근 알도 반 아이크의 작업(2) 다시 눈 여겨 보고 있다. 세대간 가치충돌 이후 사회의 요청에 응답해야 할 책무를 느낀 건축가연합의 공동의식이 한 건축가(집단)을 통해 발현된 결과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건축적으로 고유한 성취가 무엇인지, 익히 이론서를 통해 알고 있던 바를 작품집에서 구분하여 읽어내려 시도 중이다. 예를 들면, 콘크리트와 타일의 혼합적 재료구성이 구조체와 마감재의 변종적 구성이자 프로그램 촉발을 위한 기호라는 점.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
*주기(2):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 시민 고아원(Burgerweeshuis Amsterdam)”
정만영: 사진미술관에서 구사된 독특한 기하학은 이전 작업들과 많이 달라 보인다. 아마 파라메트릭한 요소가 부분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향후 작품활동에서도 사진미술관에서 구사한 건축어휘를 구체적으로 더 발전시킬 계획이 있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아마도 내가 각 프로젝트에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은 하나하나가 고유한 인격체처럼 고유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축이 다루어야 할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내 관점은 변함이 없다. 건축은 윤리적 가치를 섬세하게 통합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다방면에서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의 빛을 가리는 이 복잡한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다.
윤근주: 설계공모 당시 교수님은 카드를 쌓아 회전시킨 모양의 매스를 제안하셨다. 이보다 개념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 우리가 직전 프로젝트(서울역4호선 문화예술철도화 사업)에서 탐구했던 형태구성 원칙, 즉 얇게 썬 선형 재료를 연속적으로 쌓아 덩어리로 만드는 방식과도 일치했다. 협력이란, 일을 나누어 같이 한다는 뜻 이상으로 동일 지향성이 중요다. 때문에 이견 없이 바로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일 방식을 향후 더 발전시킬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건축형태 언어는 말이나 글처럼 앎이 늘면 더불어 다양해지는 것 같다. 전에 없던 표현방식이 등장하고 예전에는 몰랐던 건축구축술을 알게 된다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이데거가 ‘예술작업의 근원’에서 인용한 독일 속담(3처럼, 작업이 우리를 규정하고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형태언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어처럼 형태소의 집합이 아니라 문장으로 표현되는 서사적 풍경일 가능성이 높다.
*주기(3 :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에서 다음과 같은 독일 속담을 인용합니다. “작업(작품)이 장인(거장)을 드러낸다(Das Werk lässt den Meister erkennen.)”
정만영: 혹시 이 작업을 매력적인 일회성 실험으로 보고 있나? 이는 결국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와도 연관될 것 같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당신의 작업에서 핵심적 요소인지, 아니면 주변적 도구인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파라메트릭 건축은 스타일이 아니라 도구다. 오랜 건축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발전시켜 온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유용하지만,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고, 두 세계 모두를 똑같이 소중히 여긴다. 중요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표현할 ‘올바른 매체’를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윤근주 : 건축가의 개념이 표현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개념 때문에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4)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표현의 도구로 의미를 전달하고 개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방법론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전자의 방식에 가깝다.
*주(4 : 루이스 칸(Louis I. Kahn)은 도미니칸 수녀원(Dominican Motherhouse of the Sisters of St. Catherine de Ricci)의 평면을 탐색할 때 방과 실들을 스케치한 트레이싱지에서 잘라 퍼즐조각처럼 재배치하며 그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찾으려 했다.
정만영: 한국의 협력 파트너인 윤근주 건축가와 인터뷰하면서, 설계 초기 단계에서 이미 기하학적 스킴을 다이어그램으로 제시했다고 들었다. 최초의 다이어그램을 착상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질문에 이끌렸다. 건축과 사진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둘 다 예술, 과학, 그리고 일상의 경계에 서 있다. 사진으로 찍히지 않은 장소나, 건물을 세우려는 시도가 한 번도 없었던 곳은 지구상에 거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토록 '빛'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예술 형태는 드물다. 건축과 사진은 모두 무한한 시간 속에서 단 한 순간만을 포착하지만,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체다.
정만영: 그렇다면 최초의 다이어그램이 실제로 구현되기까지, 기하학적 스킴을 조정하도록 개입했던 변수가 무엇이고, 단계별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믈라덴 야드리치: 최초의 다이어그램은 사실상 공모 당시 제출했던 설계안이었다. 그 후, 외관 형태와 내부를 조화롭게 구현하기 위한 역동적이고 복잡한 모델링 과정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시공 디테일, 단열재, 자재의 무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비용까지 포함된 다양한 요소들 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포함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최적화 기법을 활용하긴 했지만, 많은 결정이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 복잡한 여정이었다.
윤근주 : 최초 공모안의 수평 루버 표현은 요철 거푸집을 이용한 이중벽 타설을 생각했다. 당선 직후 전문 시공사에 자문을 요청하였다. 공사비와 시공난이도가 높다는 기술 검토 의견을 주었다. 공장제작형 고밀도 콘크리트판을 현장 설치하는 클레이딩공법으로 자체 변경안을 만들었다.(1차변경) 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협력 기술자들이 함께했다. 외피에 가중되는 하중을 줄여야 된다는 구조기술사의 추가 의견이 있었다. ‘ㄷ’자형으로 속을 비운 형태의 초고강도콘크리트(UHPC) 성형판으로 변경하였다.(2차변경) 건물의 형태는 구조적으로 1층 외피를 전단벽으로 사용하지 않고 개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상부 외피 하중을 내측 코어 쪽으로 당겨 전이시켜야 한다. 외피 경량화가 다시 관건이 되었다. 재료를 유리섬유콘크리트(GFRC)로 바꾸고 형태는 ‘/’형으로 단위 면적으로 줄이는 디자인으로 수정되었다.(3차변경) 디지털 모델링, 실제 모형 제작 등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검토를 바치고 유리섬유콘크리트판 샘플 제작하여 표면 질감과 고정 앵커 방식을 테스트하였다. 그러나, 외피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하였다.
비정형 건축물로 구분되어 추가 예산이 배정되는 분위기였으나 서울시 공사비 증액이 과하다는 시의회의 연 이은 지적에 증액은 없던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디자인 변경이 그래왔듯 형태 의미는 동일한 해법을 찾아 다시 재료를 물색했다. 공장제작형, 기성품, 조달등록 그리고 개념적 동일 표현가능한 재료. 압축성형콘크리트판(ECP) 중 잘 사용되지 않는 짙은 무광색을 선택했다. 컴퓨터 모델링, 파사드 엔지니어링, 구조하중, 모형제작, 공사비 비교 등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였고 발주처 승인을 얻어 최종 선정되었다.(4차변경) 납품 전 공장 제품 검수, 입고 전 시공 도면 검수, 부분설치 목업 등을 시행 후 전체공사에 착수하였고 감리, 감독하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외장 재료에 한정하여 그 변화과정을 간략히 설명 드렸다. 세부 계획과 협의는 지난하게 이어졌음에도 이 수고로운 과정을 굳이 자임한 이유는 개념 의미의 유지이다. 거꾸로 말하면 수고로움 없이 개념 유지는 불가한 것이 공공건축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정만영: 기하학적인 변형이나 공사비나 압력 같은 걸 국내 공동설계자로서 해외 건축가에게 설명하거나 조율, 중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윤근주 소장님은 어떤 역할을 했나?
윤근주 : 누구든 문화와 지리적 차이를 가진 파트너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율과 중재만을 따로 맡아 진행 것이 아니므로 설계과정과 분리하여 어려움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짚어 보면 몇 가지 에피소드를 예로 설명할 수 있겠다. 설계 진행 과정에서 비엔나팀과 잦은 영상회의를 진행했다. 4시간을 넘기기 일 수였고 시차를 고려하면 서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엔나는 새벽부터 업무준비를 해야 했고 우리는 자정을 넘겨야 마무리되었다.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같은 장면을 다방면으로 설명하기위해 스케치, CAD 드로잉, 모델링, 참고사진, 재료샘플, 시방서, 계산서 등을 동원했다.
양국의 기술전문가가 영상회의에 출연하고 드문 사례라도 실제 구현된 것이 있으면 방문하여 결과를 교류했다. 전시장 내부 노출 콘크리트 벽체 구현을 위해 우리는 전국에 착색 콘크리트 사례를 방문하고 탐구하였다. 비엔나팀은 600KM 떨어진 브레겐즈 소재 줌터의 쿤스트하우스를 방문하였다. 총괄큐레이터를 만나 전시 전-후 콘크리트 면 보수 및 전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또한 별도로 국내 최고의 벽체 보수 전문업체에 훼손 복원 판넬 샘플을 제작 의뢰하여 실제로 비교하였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모든 내용을 공유하고 발주처에 보고하였다. 관리운영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점검하여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막연한 염려로 디자인 개념과 의도가 사장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하나의 사례이지만 이 모든 과정 중에 공동설계자로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었다. 야드리치 교수님은 제 판단을 신뢰하셨고, 나는 교수님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 결과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정과 예산 안에서 대부분의 계획을 원만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만영: 사진 박물관은 모노리스한 덩어리면서도, 전체 볼륨을 수평으로 잘게 분할하는 농회색 베이스 패널이 다른 각도로 적층되면서 만들어진 가상의 곡면이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윤곽 안팎을 들고 나면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운동성의 효과를 내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건축요소는 남서쪽에서 계단을 따라 위로 상승하는 광장과 그 하부로 열리는 출입구를 동시에 담아낸 파사드의 곡면일 것이다. 이 핵심적인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난관들을 극복해야 했는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처음부터 우리는 광장과 건물이 하나로 이어지게 하고자 했다. 공공 공간이 위쪽으로, 혹은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것이다. 언급하신 요소들은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계단’은 상승하는 낙관의 형상이자 제스처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는 ‘가벼움’이었다. 우리는 입구를 형성하는 주름진 직물과 같은 요소를 의도적으로 구상했다. 이처럼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커튼’을 지탱하는 이중 곡률의 강철 보 구조는 공사 막바지에 추가되었는데, 그 제작 과정은 장인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윤근주: 기술적인 언급을 보충하자면, 캔틸레버식 '커튼'은 시공이 매우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 맞춤 제작한 철제 보를 사용했는데, 정밀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최종 설치 시에는 현장에서 조정이 필요했다. 작은 정렬 오류라도 전체 흐름에 지장을 줄 수 있었기에 우리 설계자들은 이 부분이 정밀하게 시공될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였다.
당연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중 외피 틈 처리 이슈로 콘크리트루버 하부에 철판 막음 보완 공사까지 추가되었다. 공기는 예상보다 많이 늦어졌고 연속된 공정들은 문제가 생겼다. 완성하고 나면 비어진 공간을 마주하지만 공사 중 현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늦어진 공사는 이어질 공사의 준비 공간도 점유하는 것이라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장 관계자와 기술자들은 예민해졌다. 격한 논쟁도 잦아지고 우리에겐 시공 난이도가 너무 높은 디자인을 고수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마침내, 기대보다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시간, 공간의 부족을 감수하고 현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완수하려 노력한 기술자 및 관련 협력자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이다. 현장 나름의 자부심과 열정은 설계와 또 다른 차원에서 감사 드려야 한다.
정만영: 사진미술관의 핵심 개념은 볼륨의 하부가 조리개처럼 회전하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1층의 경우 네 모서리에서 지지체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야기되는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형의 커다란 보를 두어서 중앙에서 모서리의 하중까지 담당하는 독특한 방식까지 제안했다. 그런데 내부공간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구현한 해법의 결과가 전혀 드러나지 않거나 외부의 기하학과 무관하게 처리되어 아쉽다. 이러한 상황적 제약 때문에 답답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입장을 수용하였나?
믈라덴 야드리치: 건축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구조 설계와 시공의 경계를 넘어서야 했을 뿐 아니라, 조율과 문제 해결의 모든 과정에서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라는 세계적 팬데믹과 끊임없는 예산 제약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모든 한계는 결국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좌절도 있었지만, 이 분야에서는 충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예기치 않은 일이 닥쳐올 수 있다. “사람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말이 정말 들어맞는 순간들이었다.
윤근주 : 공모당선안에 대한 전문가 자문 결과를 수용하여 수정된 부분이다. 당초 계획안은 외부형태의 변화를 실내 공간에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외부 곡선이 내부에 반영되어 홀과 전시장의 벽이 안으로 휘어 들어 오르는 형상. 미술관 학예전문가들은 전시공간이 수직벽이 아닌 것에 우려를 표했다. 시공전문가들은 공사의 난이도와 무엇보다 공사비의 부족을 예상했다. 더불어 당초 지침과 다르게 미술관과 공공시설이 갖춰야 할 각종 의무시설들이 추가되었다. 중심으로 좁아졌다 퍼지는 형태의 개념적 특징은 늘어난 면적을 수용하기 어려운 장애 요인처럼 언급되기도 했다.
우리는 형태를 보완했다. 바닥에서 벽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 외장재는 3층 바닥을 만나면 수직이 되도록 수정했다. 3층 전시장부터 내부는 수직벽을 유지할 수 있다. 로봇박물관 쪽 외피는 안쪽으로 더 휘어드는 커브로 변경하였다. 휨 높이를 줄이는 대신 하부 구간의 형태적 다이나믹함을 더했다. 타원형의 로봇박물관에 사진미술관이 공간을 내어주는 형태적 맥락을 뚜렷하게 강조하여 전체 인상을 유지한 것이다.
내부에서 외형의 기하학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었다. 배면부를 관리영역으로 변경하여 일반인은 확인이 어렵게 되었다. 모든 전시장마다 공간의 형태적 변화를 감상할 수 없는 것에 아쉬움도 남았다. 당초 계획안을 유지하고 불확실한 기능은 사용하며 보완할 것을 제안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사업기획, 공사발주, 관리감독 등이 분리된 주체이고 더구나 공사완료 전 운영조직이 갖춰질 수 없는 점 등은 의사결정에 불확실성을 안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사 규모의 미술관에는 없는 그 관리영역(입출고 전시작품 전후처리실 등)을 마련한 덕분에 사진미술관은 전시기획설치 가능성이 높이는 지원시설을 얻게 되었다. 3층의 수직 전시장은 고전적 사진 전시에 용이하다. (경사진 바닥과 벽을 가지고 있는 2층은 실험적 기획전시가 가능하다) 다양한 전시를 수용해야 할 ‘첫’ 그리고 ‘공공’ 사진미술관의 프로그램 수용성을 넓히게 된 것이다. 변경 요구의 수용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용자참여 설계 방식에 동의한 것이다. 합의된 공공건축의 특성에 따른 이성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참여식 공공건축의 설계방식에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만영: 사진미술관의 전시공간을 구상하면서, 일반적으로 전시장에서 선호하는 화이트큐브를 넘어, 공연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블랙박스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 것 같다. 사진미술관에서 주최한 국제 세미나 '한국 사진의 자리'에서 전시와 공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특히 <행복이 가득한 집>과의 인터뷰에서는 “밝은 배경 벽은 사진을 액자처럼 구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 하는 경우가 많고, 이와 대조적으로 더 어두운 전시공간에서는 전시 대상 자체가 명확하게 부각되기 때문에 경계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블랙박스 개념을 로비 홀처럼 디지털 영상 공간뿐 아니라 인화 사진 전시 공간까지 확장하고자 하신 의도는 사진예술에 대한 이해 방식과 관련이 있나?
믈라덴 야드리치: 어둠은 끝이 없고, 경계도 없다. 모든 창작 행위는 어둠과 의심 속에서 출발한다. 건축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어둠을 여러 개념들과 밀접하게 연결해 왔다. 어둠과 침묵은 창작 과정의 시작을 상징한다. 마치 암실에서 현상된 이미지들이 갑작스레 어둠 속에서 드러나 점점 가시화되듯, 이 공간들 또한 명확한 경계 없이 작품이 떠오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공간이 큐레이터들에게 더 많은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눈에 보이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만영: 공공건축은 설계자가 모든 결정을 주도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진행된다. 많은 이해관계자가 개입하고, 예산이나 행정 절차 같은 외부 요소들이 설계 의도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건축이 지닌 한계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제약 조건들을 설계 언어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윤근주: 정리하자면,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참여설계의 시대적 요구를 건축가는 수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 설계안의 변경에 대한 요구는 필수적으로 논의된다. 결과적으로 수용여부와 무관하게 사용자 협의 ‘유-무’가 설계안의 실행 근거가 된다. 충분히 설명하고 버티고 때로는 수용하면서 건축의 시대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사례를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한다. 천천히 변하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꽤 긍정적으로 바뀌어 왔다.
제약 조건 속 설계언어 전환에 대한 설명은 앞선 질문에 말씀드린 몇가지 사례로 갈음하겠다.
정만영: 추후에 계단식 광장의 접근성을 높이거나, 루버 사이에 LED를 삽입해 원래 의도했던 곡면형 미디어 월을 구현하자는 제안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생각인가? 기회가 된다면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상부 기관에 적극적으로 제안할 의향도 있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건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건축가들은 마치 자녀가 떠난 빈 둥지를 마주하는 부모처럼,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놓아주는 것을 어려워한다. 사용자 역시 시간이 흐르며 공간에 안정을 느끼고, 건축가가 처음 부여한 목적을 바꾸거나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촉각 중심의 사람이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감각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을 가장 먼저 촉각으로 인지하고, 그 다음에야 다른 감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건물 외부 계단에 앉아보거나, 뛰어넘으며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형 스크린이 단순한 광고판이 아니라, 공공과 예술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ARTscreen’으로 구상했다. 공공공간 속에서 사진미술관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장치였다.
윤근주 :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외피의 콘크리트 루바 아래는 낮에도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져 있다. 밝은 빛 입자가 켜진다면 그림자를 지우고 다른 표정을 전할 것이다. 회색 루버 사이 검은 그림자에 어느 날 빛들이 말을 건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기분이 든다.
더 이상의 적극적인 제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용자와 운영자들이 (설계자도 미쳐 알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여) 건물의 가능성을 스스로 알아챌 때까지, 계획했던 내용은 잊혀지지 않도록 반복해서 말하고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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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 비엔나공대), 윤근주 (건축가, 일구구공도시건축)
인터뷰어: 정만영 (교수, 건축평론가)
정만영: 2019년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후 5년 이상을 기다린 끝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하 사진미술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믈라덴 야드리치 교수님께 묻겠다. 이번 사진미술관을 계기로 교수님의 건축 활동이 한국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건축가로서의 성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다. 세 가지 일반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다.
첫째, 평소 건축작업을 수행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론적 입장은 무엇인가?
믈라덴 야드리치: 인생 전체는 하나의 연속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경험한 이미지와 배운 교훈들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이야기의 일부다. 오스트리아의 유명 건축가 한스 홀라인의 모토인 “모든 것은 건축이다”는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평생 교육이라는 이론에 대한 기여로 이해할 수 있다.
윤근주 : 건축이 세계를 한정된 물체로 확정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도록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담아 내려 노력한다. 이것은 문자라는 보편 기호를 이용해 개별 독자에게 감흥을 일으키려는 문학의 목표(1)와 닮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기(1) : 오르한 파묵의 허버드대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 중 하나의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각자의 머리 속에 개별적으로 감흥이 일어나는 지 설명.
정만영: 둘째,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예; 상향식인지 하향식인지)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는 어떤 특성과 장점이 있다고 보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축은 꿈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예언이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측이라기보다는, 소망이 성취되는 모습을 투사하는 것이며, 무언가를 현실로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건축이 음악이나 시처럼 상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과 시적 상상을 대조시키는 세계이자, 물질적 존재를 초월하는 동시에 삶의 중심에 자리하는 그런 세계 말이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건축은 끊임없이 스스로와 마주하며, 매 순간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일생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윤근주 : 멀리서 보면 흡사 허리케인이 땅 위에 것들을 끌며 회전하며 오르는 것.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닥을 긁듯 현장을 읽고 쳇바퀴처럼 맴돌지만 중심과의 인력을 유지하며 조금씩 상향한다. 그렇다고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비유적으로 설명했지만 우리 집단의 설계방법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땅과 대상, 조건 읽기 – 중심개념을 견지한 대안 모색 – 발전과 후퇴의 반복 – 완성 후 또 다른 변화 수용” 이처럼 바꿔 적을 수 있다.
정만영: 셋째, 가장 높게 평가하는 건축가의 작품은 무엇이며 어떤 점에 주목하고 있나?
믈라덴 야드리치: 창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대부분 합리적인 논리의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설계는 대부분 언어와 글쓰기, 스케치, 모형 제작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때로는 건물의 향기를 꿈꾸거나, 건물 내부에서 메아리가 울리는 소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강조한다. 건축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는 ‘성찰’이 매우 중요하다. 팀 내에서 이야기하고, 설득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벽 속 깊은 곳의 침묵 속에 스며 있으며, 장인정신이 응축된 하나의 구성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윤근주 : 최근 알도 반 아이크의 작업(2) 다시 눈 여겨 보고 있다. 세대간 가치충돌 이후 사회의 요청에 응답해야 할 책무를 느낀 건축가연합의 공동의식이 한 건축가(집단)을 통해 발현된 결과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건축적으로 고유한 성취가 무엇인지, 익히 이론서를 통해 알고 있던 바를 작품집에서 구분하여 읽어내려 시도 중이다. 예를 들면, 콘크리트와 타일의 혼합적 재료구성이 구조체와 마감재의 변종적 구성이자 프로그램 촉발을 위한 기호라는 점.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
*주기(2):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 시민 고아원(Burgerweeshuis Amsterdam)”
정만영: 사진미술관에서 구사된 독특한 기하학은 이전 작업들과 많이 달라 보인다. 아마 파라메트릭한 요소가 부분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향후 작품활동에서도 사진미술관에서 구사한 건축어휘를 구체적으로 더 발전시킬 계획이 있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아마도 내가 각 프로젝트에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은 하나하나가 고유한 인격체처럼 고유한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축이 다루어야 할 본질적인 내용에 대한 내 관점은 변함이 없다. 건축은 윤리적 가치를 섬세하게 통합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권위주의의 그림자가 다방면에서 민주주의와 시민 사회의 빛을 가리는 이 복잡한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다.
윤근주: 설계공모 당시 교수님은 카드를 쌓아 회전시킨 모양의 매스를 제안하셨다. 이보다 개념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대안은 없었다. 우리가 직전 프로젝트(서울역4호선 문화예술철도화 사업)에서 탐구했던 형태구성 원칙, 즉 얇게 썬 선형 재료를 연속적으로 쌓아 덩어리로 만드는 방식과도 일치했다. 협력이란, 일을 나누어 같이 한다는 뜻 이상으로 동일 지향성이 중요다. 때문에 이견 없이 바로 동의할 수 있었다.
동일 방식을 향후 더 발전시킬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건축형태 언어는 말이나 글처럼 앎이 늘면 더불어 다양해지는 것 같다. 전에 없던 표현방식이 등장하고 예전에는 몰랐던 건축구축술을 알게 된다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이데거가 ‘예술작업의 근원’에서 인용한 독일 속담(3처럼, 작업이 우리를 규정하고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형태언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어처럼 형태소의 집합이 아니라 문장으로 표현되는 서사적 풍경일 가능성이 높다.
*주기(3 :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예술작품의 근원(Der Ursprung des Kunstwerkes)』에서 다음과 같은 독일 속담을 인용합니다. “작업(작품)이 장인(거장)을 드러낸다(Das Werk lässt den Meister erkennen.)”
정만영: 혹시 이 작업을 매력적인 일회성 실험으로 보고 있나? 이는 결국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와도 연관될 것 같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당신의 작업에서 핵심적 요소인지, 아니면 주변적 도구인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파라메트릭 건축은 스타일이 아니라 도구다. 오랜 건축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발전시켜 온 수많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유용하지만,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고, 두 세계 모두를 똑같이 소중히 여긴다. 중요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표현할 ‘올바른 매체’를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윤근주 : 건축가의 개념이 표현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개념 때문에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4)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표현의 도구로 의미를 전달하고 개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방법론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전자의 방식에 가깝다.
*주(4 : 루이스 칸(Louis I. Kahn)은 도미니칸 수녀원(Dominican Motherhouse of the Sisters of St. Catherine de Ricci)의 평면을 탐색할 때 방과 실들을 스케치한 트레이싱지에서 잘라 퍼즐조각처럼 재배치하며 그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찾으려 했다.
정만영: 한국의 협력 파트너인 윤근주 건축가와 인터뷰하면서, 설계 초기 단계에서 이미 기하학적 스킴을 다이어그램으로 제시했다고 들었다. 최초의 다이어그램을 착상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질문에 이끌렸다. 건축과 사진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둘 다 예술, 과학, 그리고 일상의 경계에 서 있다. 사진으로 찍히지 않은 장소나, 건물을 세우려는 시도가 한 번도 없었던 곳은 지구상에 거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토록 '빛'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예술 형태는 드물다. 건축과 사진은 모두 무한한 시간 속에서 단 한 순간만을 포착하지만, 인간의 경험을 기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매체다.
정만영: 그렇다면 최초의 다이어그램이 실제로 구현되기까지, 기하학적 스킴을 조정하도록 개입했던 변수가 무엇이고, 단계별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믈라덴 야드리치: 최초의 다이어그램은 사실상 공모 당시 제출했던 설계안이었다. 그 후, 외관 형태와 내부를 조화롭게 구현하기 위한 역동적이고 복잡한 모델링 과정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시공 디테일, 단열재, 자재의 무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비용까지 포함된 다양한 요소들 간의 균형을 맞추는 일도 포함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최적화 기법을 활용하긴 했지만, 많은 결정이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 복잡한 여정이었다.
윤근주 : 최초 공모안의 수평 루버 표현은 요철 거푸집을 이용한 이중벽 타설을 생각했다. 당선 직후 전문 시공사에 자문을 요청하였다. 공사비와 시공난이도가 높다는 기술 검토 의견을 주었다. 공장제작형 고밀도 콘크리트판을 현장 설치하는 클레이딩공법으로 자체 변경안을 만들었다.(1차변경) 계획이 진행됨에 따라 협력 기술자들이 함께했다. 외피에 가중되는 하중을 줄여야 된다는 구조기술사의 추가 의견이 있었다. ‘ㄷ’자형으로 속을 비운 형태의 초고강도콘크리트(UHPC) 성형판으로 변경하였다.(2차변경) 건물의 형태는 구조적으로 1층 외피를 전단벽으로 사용하지 않고 개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상부 외피 하중을 내측 코어 쪽으로 당겨 전이시켜야 한다. 외피 경량화가 다시 관건이 되었다. 재료를 유리섬유콘크리트(GFRC)로 바꾸고 형태는 ‘/’형으로 단위 면적으로 줄이는 디자인으로 수정되었다.(3차변경) 디지털 모델링, 실제 모형 제작 등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검토를 바치고 유리섬유콘크리트판 샘플 제작하여 표면 질감과 고정 앵커 방식을 테스트하였다. 그러나, 외피에 투입할 예산이 부족하였다.
비정형 건축물로 구분되어 추가 예산이 배정되는 분위기였으나 서울시 공사비 증액이 과하다는 시의회의 연 이은 지적에 증액은 없던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디자인 변경이 그래왔듯 형태 의미는 동일한 해법을 찾아 다시 재료를 물색했다. 공장제작형, 기성품, 조달등록 그리고 개념적 동일 표현가능한 재료. 압축성형콘크리트판(ECP) 중 잘 사용되지 않는 짙은 무광색을 선택했다. 컴퓨터 모델링, 파사드 엔지니어링, 구조하중, 모형제작, 공사비 비교 등의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였고 발주처 승인을 얻어 최종 선정되었다.(4차변경) 납품 전 공장 제품 검수, 입고 전 시공 도면 검수, 부분설치 목업 등을 시행 후 전체공사에 착수하였고 감리, 감독하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외장 재료에 한정하여 그 변화과정을 간략히 설명 드렸다. 세부 계획과 협의는 지난하게 이어졌음에도 이 수고로운 과정을 굳이 자임한 이유는 개념 의미의 유지이다. 거꾸로 말하면 수고로움 없이 개념 유지는 불가한 것이 공공건축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정만영: 기하학적인 변형이나 공사비나 압력 같은 걸 국내 공동설계자로서 해외 건축가에게 설명하거나 조율, 중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윤근주 소장님은 어떤 역할을 했나?
윤근주 : 누구든 문화와 지리적 차이를 가진 파트너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율과 중재만을 따로 맡아 진행 것이 아니므로 설계과정과 분리하여 어려움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짚어 보면 몇 가지 에피소드를 예로 설명할 수 있겠다. 설계 진행 과정에서 비엔나팀과 잦은 영상회의를 진행했다. 4시간을 넘기기 일 수였고 시차를 고려하면 서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엔나는 새벽부터 업무준비를 해야 했고 우리는 자정을 넘겨야 마무리되었다.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같은 장면을 다방면으로 설명하기위해 스케치, CAD 드로잉, 모델링, 참고사진, 재료샘플, 시방서, 계산서 등을 동원했다.
양국의 기술전문가가 영상회의에 출연하고 드문 사례라도 실제 구현된 것이 있으면 방문하여 결과를 교류했다. 전시장 내부 노출 콘크리트 벽체 구현을 위해 우리는 전국에 착색 콘크리트 사례를 방문하고 탐구하였다. 비엔나팀은 600KM 떨어진 브레겐즈 소재 줌터의 쿤스트하우스를 방문하였다. 총괄큐레이터를 만나 전시 전-후 콘크리트 면 보수 및 전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또한 별도로 국내 최고의 벽체 보수 전문업체에 훼손 복원 판넬 샘플을 제작 의뢰하여 실제로 비교하였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모든 내용을 공유하고 발주처에 보고하였다. 관리운영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점검하여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막연한 염려로 디자인 개념과 의도가 사장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하나의 사례이지만 이 모든 과정 중에 공동설계자로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이 있었다. 야드리치 교수님은 제 판단을 신뢰하셨고, 나는 교수님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 결과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일정과 예산 안에서 대부분의 계획을 원만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만영: 사진 박물관은 모노리스한 덩어리면서도, 전체 볼륨을 수평으로 잘게 분할하는 농회색 베이스 패널이 다른 각도로 적층되면서 만들어진 가상의 곡면이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윤곽 안팎을 들고 나면서, 움직이는 것과 같은 운동성의 효과를 내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건축요소는 남서쪽에서 계단을 따라 위로 상승하는 광장과 그 하부로 열리는 출입구를 동시에 담아낸 파사드의 곡면일 것이다. 이 핵심적인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난관들을 극복해야 했는지 궁금하다.
믈라덴 야드리치: 처음부터 우리는 광장과 건물이 하나로 이어지게 하고자 했다. 공공 공간이 위쪽으로, 혹은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것이다. 언급하신 요소들은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계단’은 상승하는 낙관의 형상이자 제스처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는 ‘가벼움’이었다. 우리는 입구를 형성하는 주름진 직물과 같은 요소를 의도적으로 구상했다. 이처럼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커튼’을 지탱하는 이중 곡률의 강철 보 구조는 공사 막바지에 추가되었는데, 그 제작 과정은 장인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윤근주: 기술적인 언급을 보충하자면, 캔틸레버식 '커튼'은 시공이 매우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 맞춤 제작한 철제 보를 사용했는데, 정밀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최종 설치 시에는 현장에서 조정이 필요했다. 작은 정렬 오류라도 전체 흐름에 지장을 줄 수 있었기에 우리 설계자들은 이 부분이 정밀하게 시공될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였다.
당연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중 외피 틈 처리 이슈로 콘크리트루버 하부에 철판 막음 보완 공사까지 추가되었다. 공기는 예상보다 많이 늦어졌고 연속된 공정들은 문제가 생겼다. 완성하고 나면 비어진 공간을 마주하지만 공사 중 현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늦어진 공사는 이어질 공사의 준비 공간도 점유하는 것이라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장 관계자와 기술자들은 예민해졌다. 격한 논쟁도 잦아지고 우리에겐 시공 난이도가 너무 높은 디자인을 고수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에도 마침내, 기대보다 높은 수준의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시간, 공간의 부족을 감수하고 현장에서 자신의 업무를 완수하려 노력한 기술자 및 관련 협력자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이다. 현장 나름의 자부심과 열정은 설계와 또 다른 차원에서 감사 드려야 한다.
정만영: 사진미술관의 핵심 개념은 볼륨의 하부가 조리개처럼 회전하는 것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1층의 경우 네 모서리에서 지지체가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야기되는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형의 커다란 보를 두어서 중앙에서 모서리의 하중까지 담당하는 독특한 방식까지 제안했다. 그런데 내부공간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구현한 해법의 결과가 전혀 드러나지 않거나 외부의 기하학과 무관하게 처리되어 아쉽다. 이러한 상황적 제약 때문에 답답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입장을 수용하였나?
믈라덴 야드리치: 건축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구조 설계와 시공의 경계를 넘어서야 했을 뿐 아니라, 조율과 문제 해결의 모든 과정에서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라는 세계적 팬데믹과 끊임없는 예산 제약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 모든 한계는 결국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좌절도 있었지만, 이 분야에서는 충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예기치 않은 일이 닥쳐올 수 있다. “사람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라는 말이 정말 들어맞는 순간들이었다.
윤근주 : 공모당선안에 대한 전문가 자문 결과를 수용하여 수정된 부분이다. 당초 계획안은 외부형태의 변화를 실내 공간에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외부 곡선이 내부에 반영되어 홀과 전시장의 벽이 안으로 휘어 들어 오르는 형상. 미술관 학예전문가들은 전시공간이 수직벽이 아닌 것에 우려를 표했다. 시공전문가들은 공사의 난이도와 무엇보다 공사비의 부족을 예상했다. 더불어 당초 지침과 다르게 미술관과 공공시설이 갖춰야 할 각종 의무시설들이 추가되었다. 중심으로 좁아졌다 퍼지는 형태의 개념적 특징은 늘어난 면적을 수용하기 어려운 장애 요인처럼 언급되기도 했다.
우리는 형태를 보완했다. 바닥에서 벽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 외장재는 3층 바닥을 만나면 수직이 되도록 수정했다. 3층 전시장부터 내부는 수직벽을 유지할 수 있다. 로봇박물관 쪽 외피는 안쪽으로 더 휘어드는 커브로 변경하였다. 휨 높이를 줄이는 대신 하부 구간의 형태적 다이나믹함을 더했다. 타원형의 로봇박물관에 사진미술관이 공간을 내어주는 형태적 맥락을 뚜렷하게 강조하여 전체 인상을 유지한 것이다.
내부에서 외형의 기하학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었다. 배면부를 관리영역으로 변경하여 일반인은 확인이 어렵게 되었다. 모든 전시장마다 공간의 형태적 변화를 감상할 수 없는 것에 아쉬움도 남았다. 당초 계획안을 유지하고 불확실한 기능은 사용하며 보완할 것을 제안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사업기획, 공사발주, 관리감독 등이 분리된 주체이고 더구나 공사완료 전 운영조직이 갖춰질 수 없는 점 등은 의사결정에 불확실성을 안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사 규모의 미술관에는 없는 그 관리영역(입출고 전시작품 전후처리실 등)을 마련한 덕분에 사진미술관은 전시기획설치 가능성이 높이는 지원시설을 얻게 되었다. 3층의 수직 전시장은 고전적 사진 전시에 용이하다. (경사진 바닥과 벽을 가지고 있는 2층은 실험적 기획전시가 가능하다) 다양한 전시를 수용해야 할 ‘첫’ 그리고 ‘공공’ 사진미술관의 프로그램 수용성을 넓히게 된 것이다. 변경 요구의 수용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사용자참여 설계 방식에 동의한 것이다. 합의된 공공건축의 특성에 따른 이성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참여식 공공건축의 설계방식에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만영: 사진미술관의 전시공간을 구상하면서, 일반적으로 전시장에서 선호하는 화이트큐브를 넘어, 공연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블랙박스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 것 같다. 사진미술관에서 주최한 국제 세미나 '한국 사진의 자리'에서 전시와 공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특히 <행복이 가득한 집>과의 인터뷰에서는 “밝은 배경 벽은 사진을 액자처럼 구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 하는 경우가 많고, 이와 대조적으로 더 어두운 전시공간에서는 전시 대상 자체가 명확하게 부각되기 때문에 경계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블랙박스 개념을 로비 홀처럼 디지털 영상 공간뿐 아니라 인화 사진 전시 공간까지 확장하고자 하신 의도는 사진예술에 대한 이해 방식과 관련이 있나?
믈라덴 야드리치: 어둠은 끝이 없고, 경계도 없다. 모든 창작 행위는 어둠과 의심 속에서 출발한다. 건축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어둠을 여러 개념들과 밀접하게 연결해 왔다. 어둠과 침묵은 창작 과정의 시작을 상징한다. 마치 암실에서 현상된 이미지들이 갑작스레 어둠 속에서 드러나 점점 가시화되듯, 이 공간들 또한 명확한 경계 없이 작품이 떠오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공간이 큐레이터들에게 더 많은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눈에 보이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만영: 공공건축은 설계자가 모든 결정을 주도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진행된다. 많은 이해관계자가 개입하고, 예산이나 행정 절차 같은 외부 요소들이 설계 의도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건축이 지닌 한계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제약 조건들을 설계 언어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윤근주: 정리하자면,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참여설계의 시대적 요구를 건축가는 수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 설계안의 변경에 대한 요구는 필수적으로 논의된다. 결과적으로 수용여부와 무관하게 사용자 협의 ‘유-무’가 설계안의 실행 근거가 된다. 충분히 설명하고 버티고 때로는 수용하면서 건축의 시대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사례를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한다. 천천히 변하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꽤 긍정적으로 바뀌어 왔다.
제약 조건 속 설계언어 전환에 대한 설명은 앞선 질문에 말씀드린 몇가지 사례로 갈음하겠다.
정만영: 추후에 계단식 광장의 접근성을 높이거나, 루버 사이에 LED를 삽입해 원래 의도했던 곡면형 미디어 월을 구현하자는 제안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생각인가? 기회가 된다면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상부 기관에 적극적으로 제안할 의향도 있는가?
믈라덴 야드리치: 건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건축가들은 마치 자녀가 떠난 빈 둥지를 마주하는 부모처럼,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놓아주는 것을 어려워한다. 사용자 역시 시간이 흐르며 공간에 안정을 느끼고, 건축가가 처음 부여한 목적을 바꾸거나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촉각 중심의 사람이다. 인간에게는 이러한 감각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을 가장 먼저 촉각으로 인지하고, 그 다음에야 다른 감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건물 외부 계단에 앉아보거나, 뛰어넘으며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형 스크린이 단순한 광고판이 아니라, 공공과 예술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ARTscreen’으로 구상했다. 공공공간 속에서 사진미술관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장치였다.
윤근주 :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외피의 콘크리트 루바 아래는 낮에도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져 있다. 밝은 빛 입자가 켜진다면 그림자를 지우고 다른 표정을 전할 것이다. 회색 루버 사이 검은 그림자에 어느 날 빛들이 말을 건다.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기분이 든다.
더 이상의 적극적인 제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용자와 운영자들이 (설계자도 미쳐 알지 못하는 것을 포함하여) 건물의 가능성을 스스로 알아챌 때까지, 계획했던 내용은 잊혀지지 않도록 반복해서 말하고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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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E-Booklet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Photo SeMA
건축 · 인테리어 실시설계 및 설계의도구현 설계공모 당선안 보러가기
설계 건축 2020.03 ~ 2021.08 / 인테리어 2023.02 ~ 2024.04
시공 2021.11 ~ 2024.09
설계의도구현 2022.04 ~ 2024.09
대지면적 3,166.80 ㎡
연면적 7,048.52 ㎡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구분 신축
공동수행 Jadric Architektur
협동 구조(이든구조), 기계전기통신소방(하나기연), 조경(얼라이브어스), 파사드엔지니어링(익스펌), 친환경설계(에코넥스)
시공(신한건설, 해동건설), 상주리(종합건축사사무소 근정), 사이니지(네임드), 이병훈(코디네이터), 남궁선, 정지현(사진)
업무담당 나지혜, 이수정, 한호림, 신다움, 민경주, 최형순, 민경현, 이지은,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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