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동 B 빌라 리노베이션
설계 2013.09 ~ 2014.06
면적 286㎡
용도 주거
구분 리노베이션
협동 시공(빗살무늬건축), 구조(은구조), 사진(남궁선)
업무담당 엄태산, 김준호
#청담동 #빌라 #리노베이션



거실이 있던 남쪽 발코니 건너편에는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이웃집의 회색 벽이 가까이 마주 서 있다. 반면 식당이 있던 곳의 북쪽 발코니에서는 잘 자란 소나무 여러 그루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밝은 햇빛으로 충만한, 하지만 도심의 잿빛 모습뿐인 거실. 수목으로 우거진 초록 풍광을 마음껏 즐기기에 충분히 넓은 창을 가진, 하지만 빛이 전혀 들지 않는 북향의 식당.



세 개의 낮은 바닥판을 두었다. 동서로 기다란 계단 한단 정도 높이의 첫 번째 바닥판은 남쪽 발코니와 나란히 좁고 길게 놓여있다. 그 바닥판 위로는 벽난로와 욕조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올려져 있다. 벽난로가 있는 곳 주위는 거실이 되고 욕조 주위는 침실이 된다. 혹시라도 벽난로의 불씨가 튀거나 욕조의 물이 넘쳐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게끔 표면은 단단한 돌로 되어있다.
두 번째 바닥판은 의자 높이 정도이고 첫 번째와 비교해 아주 짧으며 세로로 놓여져 있다. 예전에 방과 거실을 구분하던 벽의 일부를 덜어내서 독립된 벽체로 만들었다. 이 벽체는 안과 밖 경계의 모서리쯤에 걸쳐 있다. 바닥판은 이 독립벽을 밑에서 받쳐주는 기단의 역할을 한다. 그 기단 위로는 TV를 올려둘 수도 있고 때로는 발코니를 지나다 잠시 걸터앉아 시원한 바깥바람을 쐴 수도 있는 긴 의자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바닥판은 여러 가지의 높이로 되어있다. 안방바닥에 까는 두툼한 이부자리 정도의 두께, 부드러운 솜을 촘촘히 채워 만든 푹신한 베개를 살짝 기대 세워둔 높이, 옛집의 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름대나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있을 때의 나무로 만든 편안한 난간같은 팔걸이 높이가 그것이다. 이 위에서는 혼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낮잠을 잘 수도 있고 겨울이면 단 둘이 마주앉아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면서 벽난로의 모닥불을 쬐일 수도 있으며 여럿이 함께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TV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피부에 닿으면 기분 좋은 부드러우면서도 무르지 않은 천연 섬유가 이 마지막 바닥판의 겉면이 된다.




이렇게 놓여진 세 개의 바닥판으로 만들어진 경계를 따라 세 개의 얇고 엷은 벽들을 세웠다. 사실 벽이라고 했지만 막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다. 종이나 유리만큼이나 얇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길이가 긴 벽은 거실 발코니의 바깥쪽을 따라 세웠다. 이것 역시 세웠다기보다는 매달았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뽀얗고 가벼운 이 벽체는 바닥에서 조금 띄워져 있어서 마치 천정에 매달린 커튼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실에서 마주보이는 이웃집의 무덤덤한 시멘트벽의 모습을 앞으로 이 얇고 엷은 긴 벽이 살며시 가려줄 것이다. 삭막한 주위를 아련하고 흐릿하게 뒤바꿔놓은 대신에 남쪽의 강한 직사광선은 이 얇은 막을 통과하면서 확산되고 산란된 빛으로 바뀔 것이다.
또 다른 얇은 벽은 거실에 놓였던 세 번째의 낮은 바닥판을 둘러싸듯이 만들어졌다. 마치 부드러운 천을 어깨에 두른 채 양팔 벌려 거실을 감싸고 있는 듯한 이 벽은 발코니의 첫 번째 엷은 벽을 통과해 들어와 거실 안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산란광이 그림자로 가득한 맞은 편 식당까지 전해지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 벽체는 침실의 침대 바로 옆으로 세웠다.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이 미서기벽은 침실의 출입구이기도 하고 거실과 침실 사이의 복도로도 되며 벽 전부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서 활짝 열어두면 거실과 침실은 하나의 커다란 방이 되기도 한다.


이곳은 작지 않은 앞마당이 있어 좋았지만 좁았던 내부 공간 때문에 고민하던 건축주가, 대신 더 넓은 바닥과 외부로 더 많이 열린 창들이 마음에 들어 어렵게 선택된 곳이다. 투과, 여과, 중첩, 산란 등의 자연현상들은 건축주가 처음 이곳을 방문하면서부터 직감했던 열린 가능성들과 함께 만나 이제부터 녹록치만은 않은 여러 조건들 사이사이로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많은 벗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기에 넉넉하고 단둘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히 아늑한 집을 원한 건축주의 바람이 이 계획안의 가장 큰 염두였다.

청담동 B 빌라 리노베이션
설계 2013.09 ~ 2014.06
면적 286㎡
용도 주거
구분 리노베이션
협동 시공(빗살무늬건축), 구조(은구조), 사진(남궁선)
업무담당 엄태산, 김준호
#청담동 #빌라 #리노베이션
거실이 있던 남쪽 발코니 건너편에는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이웃집의 회색 벽이 가까이 마주 서 있다. 반면 식당이 있던 곳의 북쪽 발코니에서는 잘 자란 소나무 여러 그루가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밝은 햇빛으로 충만한, 하지만 도심의 잿빛 모습뿐인 거실. 수목으로 우거진 초록 풍광을 마음껏 즐기기에 충분히 넓은 창을 가진, 하지만 빛이 전혀 들지 않는 북향의 식당.
세 개의 낮은 바닥판을 두었다. 동서로 기다란 계단 한단 정도 높이의 첫 번째 바닥판은 남쪽 발코니와 나란히 좁고 길게 놓여있다. 그 바닥판 위로는 벽난로와 욕조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올려져 있다. 벽난로가 있는 곳 주위는 거실이 되고 욕조 주위는 침실이 된다. 혹시라도 벽난로의 불씨가 튀거나 욕조의 물이 넘쳐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게끔 표면은 단단한 돌로 되어있다.
두 번째 바닥판은 의자 높이 정도이고 첫 번째와 비교해 아주 짧으며 세로로 놓여져 있다. 예전에 방과 거실을 구분하던 벽의 일부를 덜어내서 독립된 벽체로 만들었다. 이 벽체는 안과 밖 경계의 모서리쯤에 걸쳐 있다. 바닥판은 이 독립벽을 밑에서 받쳐주는 기단의 역할을 한다. 그 기단 위로는 TV를 올려둘 수도 있고 때로는 발코니를 지나다 잠시 걸터앉아 시원한 바깥바람을 쐴 수도 있는 긴 의자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바닥판은 여러 가지의 높이로 되어있다. 안방바닥에 까는 두툼한 이부자리 정도의 두께, 부드러운 솜을 촘촘히 채워 만든 푹신한 베개를 살짝 기대 세워둔 높이, 옛집의 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름대나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있을 때의 나무로 만든 편안한 난간같은 팔걸이 높이가 그것이다. 이 위에서는 혼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낮잠을 잘 수도 있고 겨울이면 단 둘이 마주앉아 따뜻한 차를 나눠 마시면서 벽난로의 모닥불을 쬐일 수도 있으며 여럿이 함께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TV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피부에 닿으면 기분 좋은 부드러우면서도 무르지 않은 천연 섬유가 이 마지막 바닥판의 겉면이 된다.
이렇게 놓여진 세 개의 바닥판으로 만들어진 경계를 따라 세 개의 얇고 엷은 벽들을 세웠다. 사실 벽이라고 했지만 막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다. 종이나 유리만큼이나 얇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길이가 긴 벽은 거실 발코니의 바깥쪽을 따라 세웠다. 이것 역시 세웠다기보다는 매달았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뽀얗고 가벼운 이 벽체는 바닥에서 조금 띄워져 있어서 마치 천정에 매달린 커튼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실에서 마주보이는 이웃집의 무덤덤한 시멘트벽의 모습을 앞으로 이 얇고 엷은 긴 벽이 살며시 가려줄 것이다. 삭막한 주위를 아련하고 흐릿하게 뒤바꿔놓은 대신에 남쪽의 강한 직사광선은 이 얇은 막을 통과하면서 확산되고 산란된 빛으로 바뀔 것이다.
또 다른 얇은 벽은 거실에 놓였던 세 번째의 낮은 바닥판을 둘러싸듯이 만들어졌다. 마치 부드러운 천을 어깨에 두른 채 양팔 벌려 거실을 감싸고 있는 듯한 이 벽은 발코니의 첫 번째 엷은 벽을 통과해 들어와 거실 안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산란광이 그림자로 가득한 맞은 편 식당까지 전해지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 벽체는 침실의 침대 바로 옆으로 세웠다.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이 미서기벽은 침실의 출입구이기도 하고 거실과 침실 사이의 복도로도 되며 벽 전부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서 활짝 열어두면 거실과 침실은 하나의 커다란 방이 되기도 한다.
이곳은 작지 않은 앞마당이 있어 좋았지만 좁았던 내부 공간 때문에 고민하던 건축주가, 대신 더 넓은 바닥과 외부로 더 많이 열린 창들이 마음에 들어 어렵게 선택된 곳이다. 투과, 여과, 중첩, 산란 등의 자연현상들은 건축주가 처음 이곳을 방문하면서부터 직감했던 열린 가능성들과 함께 만나 이제부터 녹록치만은 않은 여러 조건들 사이사이로 저마다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많은 벗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기에 넉넉하고 단둘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히 아늑한 집을 원한 건축주의 바람이 이 계획안의 가장 큰 염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