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rcial]압구정 R 빌딩 '지붕 위에 놓여진 텅 빈 집', 김수근프리뷰 수상






압구정 R 빌딩


설계               2010.08   

면적               1,104.7㎡  

용도               근린생활시설

구분               신축

협동               사진(일구구공도시건축)

업무담당        엄태산

#압구정  #옥상









넓지 않은 도로 폭 때문에, 건물 위 Mass는 가까이에서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오히려 멀리에서는 쉽게 보이는 편이다. 이 Mass는 도시 가로의 스카이라인을 그라운드로 보고, 오래된 도시의 옥상 위에 새로운 것을 축적하듯 만들어진 것이다.

가로 50미터 세로 20미터 높이 12미터의 기존 건물 위에 가로 38미터 세로 9미터 높이8미터의 Mass가 놓여진다. 새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중성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Mass는, 건물들 사이에서 비슷한 듯 다른 태도로 서 있다. 8미터 높이 중 6미터는 주변 건물의 색과 재료를 혼합한 듯 거칠고 짙은 회색이다. 상부 2미터는 젖빛 반투명 유리로 구성되어 있다.

거리에서 1층 입구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도착한다. 홀의 모습이 다른 층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다르다. 가운데 계단실은 비켜서듯 둥글게 열려있고, 그 너머 투명한 창으로 외부공간이 보인다. 둥글게 비켜선 벽 위에는 천창이 설치되어 있다. 굽은 벽 위로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내린다. 밤이면 달빛 같은 옅은 빛이 깃들도록 천창 위에는 조명이 있다.

홀과 직교하는 낮은 복도에 서고 나서야, 이 새롭지 않은 새 Mass는 하나같은 두 개의 Empty Mass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두 공간 모두가 소리를 주제로 하는 사운드갤러리로 계획되어 있다. 하나는 스테레오 오디오 시스템, 나머지 작은 하나는 모노 오디오 시스템. 공간의 차이만큼 소리도 다른 모양새로 담겨질 것이다. 소리를 위해 자연스럽게 비워진 공간은 민예품으로 채워질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각각의 사운드갤러리는 2.2미터의 다소 낮은 천장고과 투명한 창을 가진 연결통로로 이어진다. 외부공간의 담백한 조경을 바라보며, 통로를 지나는 동안, 지금 딛고 서 있는 이 바닥이 그저 땅처럼, 대지처럼 생각되기를 바란다.  기존건물을 하나의 랜드스케이프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Landscape of Sky Line, Serene Empty Mass on the Sky Line Ground.


높이 6.8미터의 사운드갤러리로 들어서게 된다. 세배의 높이, 네배의 폭. 낮은 통로를 지나 상대적으로 큰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단단한 구조를 바탕으로 세워진 두께 0.5미터의 벽체는 소음방지용 글라스울로 충진 되어 있다. 거의 모든 벽체의 상부에는 밝은 빛이 부드럽게 드는 천측창이 있다. 에칭처리 된 저철분 유글라스와 샌드블라스트 24mm복층유리창.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유리창 사이에는 길이 방향으로 조명이 설치되어있다. 조명이 켜지면, 공간의 안과 밖으로 빛을 내어 주게 된다.

고요함으로 가득하고 단단하게 텅 빈 양명한 공간

빈 공간은 주제를 가지고 소리로 다시 채워지게 된다. 드디어 소리와 사람이 조우하는 순간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날이 저물어 있다면, 상단의 하얀 창에서 밤의 거리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도 있겠다. 새로운 Empty Mass가 도시의 밤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거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1.

‘옥상에 작은 온실을 하나 만들까 합니다. 존포슨의 책에 나오는 헛간 같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단골 카페에서 인사를 나눴던 그가, 건축주로써 건낸 말이었다. 며칠 후 조경가와 현장을 방문했다. 가로 50미터, 세로 20미터 가량의 옥상이 가운데 코어를 두고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옥상 가득, 억새를 심고, 작은 온실을 배처럼 띄우면 어떨까. 바람이 부는 장면을 상상했다.

2.

피터 줌터가 하이드파크에 계획한 서펜타인갤러리 파빌리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꽃과 하늘로 가득한, 난데 없는 옥상 정원.

3.

온실 설계를 위해, 기존 건물의 법적 한계를 분석하던 중 한 개 층 정도의 공간을 증축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축주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의 마음속에 ‘빈 공간’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4.

‘확실하진 않지만 소리를 주제로 하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숙고 끝에 건축주는 ‘빈 공간’의 용도를 마련해 왔다. 소리를 위한 공간은 비어있기 마련. 가능하다면 다른 전시도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겠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공간의 이름을 ‘사운드갤러리’로 정했다.

5.

사운드마스터들의 등장. 1930년대 독일의 엔틱 오디오를 수선해서 이 장소에 넣기로 결정했다. 3천석 규모의 극장에서 사용하던 엠프와 스피커는 그 위용이 대단했다. 소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공간은 디자인되기 시작했다.

6.

기존 건물 위에 증축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조안전 진단이 실시되었다. 한 달여의 조사와 협의 끝에 규모에 적당한 구조방식의 큰 틀을 정하게 되었다. 기존 건물의 하부 중 일부는 탄소섬유나 철판으로 보강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문제는 가벼운 구조로 증축하되, 소리가 울리지 않는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7.

대지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맞은 편 블록의 이면 도로. 동호대교 남단에 면한 곳이다. 차량과 사람의 이동이 매우 많다. 거리는 커피숍, 옷가게, 음식점 등이 즐비하고, 2층 이상에는 성형을 위한 병의원이 다수 자리하고 있다. 본 건물도 이런 압구정역 주변의 전형적인 상황에 놓여져 있다.

8.

좋은 소리가 전해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간의 비례가 중요해졌다. 문화로 소리를 듣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구조의 단단함이 필수적인 사항이 되었다. 가벼우면서 단단한 구조로 틀을 짜야 한다. 흔들림 없는 단단함. 외부 상황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고요함이 유지되는 내부공간이 되어야 한다. 건물의 재료와 디테일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단순히 비어있는 박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고요한 공간의 구조적 견고함.

9.

기존 건물의 옥상에 새로운 집을 짓는 것. 가로의 단면을 분석하고, 스카이라인 위에 그라운드를 만드는 것. 기존의 건물과 가로 풍경 모두를 랜드스케이프로 인식하고, 이 상황의 관계를 설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10.

가로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도착할 때 까지, 새로이 계획된 공간은 그 모든 맥락에서 벗어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놀라운 것으로 채워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11.

‘추가로 논의하기 전에, 잠시 감상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브리핑을 막 마치고,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건축주는 실무 감사님의 질문을 서둘러 막고 이처럼 말씀하셨다. 상황을 고려해서 대폭 수정된 계획안을 다시 만들었지만, 건축주와의 감흥은 계속 이어졌다.

12.

공기의 흐름이 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기설비, 냉난방 방식 등. 자연스러운 대류가 일어나도록 수정되었다.

13.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침에 따라 본 건물은 도시계획심의를 거쳐 약 300m2의 면적을 1개 층 증축할 수 있다. 단, 증축은 1회에 한 한다. 쉽지 않은 행정절차가 시작되었다.

14.

총 3번의 심의 끝에 기대했던 면적과 용도대로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대부분의 보완내용은 다행히도 설계안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가로의 상황과 증축된 공간의 활용방안을 ‘손쉽게 알아보도록’ 설명하는 자료를 추가로 첨부하는 것이었다.

이에 4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15.

용적률 인센티브를 위해 가로에 면해 설치하게 된 쌈지공원은 1층 외부공간 전체를 관장하는 틀로 새로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옥상 사운드갤러리와 기능과 형태, 재료 모두 관계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되었다.

16.

시공을 위한 도면의 목적은 설계안을 명확히 설명하여 바르게 실현하는데 있다. 그것은 디자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한다. 또한,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 여백이 필요하다.

17.

공사비 산정을 위한 시공사의 현장조사 후에 리노베이션의 어려움을 또다시 느끼게 되었다. 철거 이전에는 기존 건물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증축을 위해 하부구조를 제대로 보수 해야 한다. 그러나 견적을 위해 임대중인 상점을 철거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도 수용되기 어렵다. 도면화 작업 중에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

18.

오래된 도시에 낡은 건물을 수용하고 축적하듯 건물을 쌓아 올리는 일은, 철학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환부에 매스를 대고 속을 열어보고, 실상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실시도면, 견적, 공사업체의 자질, 행정절차 등 모든 것들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19.

‘어제 도착한 물건입니다. 바우하우스 시절에 디자인 된 재떨이지요.’

건축주는 이 일에 앞서 수집을 시작했다. 전문적인 콜렉터가 되려는 마음은 없다고 하지만, 깊은 안목을 갖고 계신 분이다. 계획이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이처럼 이베이를 통해 귀한 물건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공사비 검토 결과를 보고하기 위한 자리에서도, 앞서 박스를 풀어 내 보이셨다. 바우하우스 시절 독일에서 제본된 인문학전집이었다. 아름다운 문양의 표지를 보면서 살아보지 못한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

건물을 짓기 위한 거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현실화의 시작은 이제 건축주의 상황에 달려 있다. 우리의 공은 상대방을 향해 던져 졌고, 상대는 공을 받기 위해 몸을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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